<사이에서> 이창재 감독, 대무 이해경

2006.09.11 / 김영진 편집위원(명지대 교수)  

이창재 감독의 <사이에서>는 무당의 삶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신과 인간, 이승과 저승,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며 그 ‘사이에서’ 숙명적 삶을 살고 있는 무당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이창재 감독과 그의 카메라에 담겼던 대무(大巫) 이해경을 김영진 편집위원이 만났다.

거부할 수 없는 숙명

대무(大巫) 이해경에게 어느 날 찾아온 스물여덟의 여자 인희. 그녀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고 다른 사람의 앞날이 보인다고 한다. 이렇게 이해경에게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남다른 사람들이 찾아온다. 원인도 없이 왼쪽 눈을 실명하고 신이 보인다는 여덟 살 동빈이, 그리고 30년간 암을 비롯한 갖은 병을 앓고 쉰 살이 되어서야 신내림을 받으러 이해경을 찾아온 손영희. 이해경은 이렇듯 신의 숙명을 따라야 하는 사람들을 이끄는 소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의처증이 있는 남편에게 시달리고 다섯 살 아들을 저 세상에 먼저 보낸 후 거부할 수도 선택할 수도 없는 운명의 시달림을 받아온 사람이다. 아무리 도망치려 발버둥 쳐도 이들은 신이 그어놓은 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서 살아가야 할 숙명. 이것이 그녀가 말하는 무당으로서의 팔자다. 다큐멘터리 <사이에서>는 이렇게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을 지닌 사람들을 지켜보고 보듬어야 하는 대무 이해경을 그린 영화다. 이창재 감독은 있는 그대로의 무당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 그들을 찾기 시작한 지 3개월, 시행착오 끝에 대무 이해경을 만났다.

Q. 김영진 편집위원 : 촬영은 몇 개월이나 걸렸나?

이창재 감독 : 총 8개월 정도인데 실제 촬영 기간은 6개월 정도였다.

김영진 편집위원 : 그럼 그 6개월 동안은 쭉 촬영만 한 건가?

이창재 감독 : 1주일에 2~3번 정도 찍었다. 초반엔 많이 찍다보니 동해안에서 별신굿도 찍고 그랬다. 앞부분만 거의 30~40시간, 손도 못 댈 만큼 많았다. 너무 그물망을 넓게 쳐서 그랬던 거다. 이해경 선생님을 찍기 시작하면서부터 스토리라인이 보였고, 그제야 전체 이야기가 보이더라. 그 전까지 수십 명을 만났어도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랐는데 그때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김영진 편집위원 : 영화의 중심인물은 내림굿을 받으러 이해경 선생을 찾아온 인희다. 처음 바닷가 장면부터 시선을 잡아끈다. 만약 인희와 이해경 선생의 관계가 없었다면 이 다큐멘터리는 어떻게 됐을까?

이창재 감독 : 무당이 되려는 사람들 중엔, 속된 말로 물이 오른 사람이 많다. 제자가 되고 싶은 사람도 많고,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스펙트럼도 많다. 과격한 사람도 있고 비주얼적으로도 훨씬 영화적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인희를 보는 순간, 이 사람만 찍겠다 결정하고 다른 사람은 배제하고 갔다. 그만큼 나에겐 중요한 인물이었다.


김영진 편집위원 : 인희는 스스로 내림굿을 받으러 왔지만 막상 일이 닥치자 무서워한다. 그 장면에서 무당이 되기 싫어하는 인희의 인간적 갈등이 극적으로 드러난다.

대무 이해경 : 그건 인희뿐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거부했었다. 유독 50대 손명희 씨가 의외로 덤덤할 수 있었던 건 30년 동안 신내림을 거부하다 결국 지금에야 순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희는 이제 거부를 시작한 거다. 나 역시 십 년 이상 거부하다 무당이 됐다. 인희 때문에 영화가 극적으로 보인단 말은 틀린 거다. 극적 요소를 생각했다면 이창재 감독님 말처럼 더 격렬한 반응을 내비치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나는 다른 무당보다 내림굿을 안 하는 편이다. 내 나름대로 기준을 두고 그 기준 속에 들어가면 하는 편이다.


김영진 편집위원 : 그 기준이 무엇인가?

대무 이해경 : 일단 인성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찾기가 힘들다.
이창재 감독 내림굿은 사업적인 측면도 있지만 제자를 선택하는 의미도 갖는다. 즉, 특정 무당에게 있어 내림굿을 받은 사람은 그가 배출한 제자라는 의미다. 그런 면에서 이해경 선생님이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대충대충 하면 됐다고, 가라고 내쫓는다.
대무 이해경 내가 성질이 원래 좀 그렇다.(웃음)

이창재 감독 : 이 영화 촬영하면서 이해경 선생님께 미리 전화를 하지 않고 그냥 갔다. 난 절대적인 관찰자라는 입장에서. 그런데 이해경 선생님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조금 민감해하셨다. 일단 찍고 이후에 선택하려고 하니까 그걸 뺏지 말라고 하셨다.

대무 이해경 (웃음) : 내가 보기에 그건 관찰자의 입장이 아니라 감히 인간이 신을 증명하려 한 거였다. 가끔 이 감독이 내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찍은 화면 중에 있을 수 없는 일들을 담은 게 많으니 확인을 좀 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거였다. 암만 똑똑한 과학자가 와도 학문적으로 해결이 안 되는데 어떻게 그게 확인이 되겠나.

이창재 감독 : 과학적으로 증명할 의도는 없었다. 증명보다는, 처음 굿 전체를 생각하다 이해경 선생님 개인으로 옮겨가고, 또 그게 무당이라는 직업을 가진 여자 이야기로 옮아갔다. 그러면서 당초 인터뷰했던 다른 사람들 이야기가 모두 사라졌다. 선생님이 했던 부분 말고 외부 첨언은 가지 말자, 그 부분을 모두 제거하고 개인으로 더 들어갔다. 인희나 동빈이 같은 경우 이해경 선생님을 위해 봉사하는 캐릭터다. 인희나 동빈이가 이해경 선생님이 겪어왔던 갈등을 재현하는 거다. 또 손명희 씨는 지금의 선생님과 비교하는 인물이다. 세 명이 영화 속으로 들어오면 선생님의 이야기를 직접 보여주지 않아도 선생님을 다 이야기할 수 있다고 봤다. 다른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 같지만, 결국 이해경 선생님을 보여주는 영화다.


김영진 편집위원 : 이 영화는 어떤 면에서 무당들 내부의 관계만 찍은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긴장, 갈등, 고통, 신명이 계속 전달되다보니 보는 사람 입장에선 압도당하고 보기 힘들기도 했다.

대무 이해경 : 힘들다는 사람 많더라. 너무 몰두되다보니 힘들다는 거다. 지인들이 시사 뒤, 영화는 너무 좋은데 보는 내내 너무 답답했다며 바로 맥주를 마시러 가더라.(웃음)

이창재 감독 : 이해경 선생님은 드라마가 넘치는 분이다. 나는 그 넘치는 이야기들을 방어하는 데 주력했다. 강박적으로 거리두기를 한 거다. 처음에는 정말 드라마 같은 영화를 만들까 하다 그만뒀다. 샷들만 보더라도, 동빈이의 인터뷰 장면 후 그 여운을 조금만 길게 잡아주면 관객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걸 아는데, 바로 앞에서 잘라버렸다. 막판 인희의 장면에서도 울 수 있는 부분에서 감정이입을 못하게 바로 앞에서 화면을 잘랐다. 중간 중간 삽입되는 손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손이 들어오면서 영화가 자꾸 ‘이것은 다큐멘터리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건 이야기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라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 효과는 반반이더라. 보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이 쭉 들어갔다 빠져나오고 싶은데 자꾸 감독이 설친다고도 하더라. 그런데 나는 다큐멘터리는 다큐멘터리적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한국의 다큐는 너무 다큐드라마에 경도돼 있다. 자신의 일상을 돌아봐라. 그렇게 울 일이 없다. 한 달에 한 번이나 울까. 진짜 일상을 보여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김영진 편집위원 : 나는 종교적 체험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운명, 뭐 그런 것들에 동요를 느끼겠더라. 만일 나도 그런 운명이 있다면 어떨까 생각하게 만든다.

이창재 감독 : 나도 신을 믿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친구들 하는 말이, 무슨 이유에선지 굿하는 무당들은 오른손이 크다더라. 얼굴은 표정 같은 걸로 감출 수 있는데 손은 못 바꾼다더라. 손은 두 번째 표정이라는 거다. 얼굴은 과장될 수 있지만, 손은 읽을 수만 있으면 가장 정확하다는 거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손을 보여주며 관객들이 자신의 운명을 돌아볼 시간을 마련했다.

대무 이해경 :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손을 펴는 순간, 영화를 본 지인들이 내가 손금 보는 관상쟁이로 둔갑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더라. 난 무당인데 무당하고 손하고 무슨 관계가 있냐고. 영화 찍을 때도 그 이야기를 감독님께 했다. 그런데 감독님은 손엔 바꿀 수 없는 흐름이 있다며 그걸 잡아냈다고 하더라. 듣고 보니 그게 참 맞다.

이창재 감독 : 뒤에 가면 손이 여러 컷 나온다. 얼굴과 얼굴은 맞댈 수 없는데 손은 서로 잡으면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 선생님이 손명희 씨 손을 떨릴 정도로 잡고 있더라. 그 손을 봐라. 위로가 필요한 사람을 손으로 잡은 거다.

대무 이해경 : 남들은 그냥 스쳐갈 수 있는 건데도 감독님은 그 부분을 포착해 무당의 진짜 의미를 잡아줬다. 나는 그게 고맙다.

이창재 감독 : 하지만 아직 점도 안 봐줬잖나.(웃음)

대무 이해경 : 사람이 신을 받는 걸 말문이 터진다고 하는데, 난 내가 점 보러 끌려간 자리에서 거기 점 보러 온 사람들을 다 봐주면서 말문이 터졌다. 무당이 돼서 생판 모르는 사람 점을 봐주면서 나만의 신조가 생겼다. 그건, 절대 아는 사람 점은 안 보겠다는 거다.(웃음)


달리 보고 달리 찍는다


10년간 한국 방송 다큐멘터리 작업과 미국에서 독립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온 이창재 감독은 그간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계의 주된 흐름에 회의를 느꼈다. 대상과의 친밀성, 직접성은 좋았지만 거친 영상, 롱테이크 편집 등으로 관객과 멀어진 역작용도 컸기 때문이다. 이창재 감독은 연출자가 개입하진 않되 관객에게 보다 친절한 다큐멘터리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특히 복잡한 의식이 진행되는 굿에 관객들의 감정을 유도하기 위해선 이야기상의 드라마가 필요했고, 보다 통제된 영상 곧 영화적 이미지가 요구된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선 순도 높은 영상을 정제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이 필요했다. 그것은 현장이나 대상을 연출적으로 통제하지 않으면서도 정제된 영상을 뽑아내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해서 이창재 감독은 일반적인 상업 영화 수준의 컷과 신을 얻을 수 있었다. 최석운 촬영감독의 정밀한 HD 촬영과 더불어 후반엔 이창재 감독도 6㎜ DV 캠코더를 들고 직접 나섰다.



김영진 편집위원 : 카메라는 몇 대나 사용했나?

이창재 감독 : 두 대였다. HD 한 대와 6㎜ DV 카메라. 최석운 촬영감독이 방송을 했던 분이라 속도가 민첩하다. 그런데 오히려 샷들이 너무 탄탄하다보니 무너뜨려야겠다 싶어 샷을 뭉개는 작업, 무너뜨리는 작업을 했다. 마지막 내림굿 장면 같은 경우는 HD로 찍은 샷들이 너무 선명해 가짜 같더라. 그래서 마지막엔 HD로 찍은 건 안 쓰고 내가 6㎜ DV로 찍은 것만 썼다. 전주국제영화제 상영 뒤에도 프로그래머들이 '너무 드라마 같다', '영화 같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그건 아니다. 확실히 자신할 수 있는 게, 한 달 촬영하다보니 나 역시도 굿을 할 수 있겠더라. 굿이 한 50가지 거리가 있는데 그걸 매번 다하는 게 아니라 보통 10가지~20가지만 한다. 틀은 다 비슷하니 다음에 무슨 움직임이 있을지 다 알 수 있는 거다. 그러니 영화 속에서 보이는 영상은 작위적인 연출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담았는데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온 거다. 우리나라 독립 다큐멘터리를 보면 거친 것 자체가 다큐의 미학처럼 인식된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할 수 있으면 뭐든 다 해봐야 한다는 거다. 이미 동선이 다 파악됐다면 최선을 다해 따라가야 한다. 예쁘게 찍으려는 것과는 다른 말이다.


김영진 편집위원 : 첫 장면, 바닷가에서 인희가 신내림을 힘겨워하는 것은 좋은 의미에서 매끄럽고 극적으로 처리됐다.

이창재 감독 : 그 장면은 촬영 워밍업하러 갔다 거의 우연히 건진 것이다.
경 돌발 상황이었다. 찍은 줄도 몰랐고 예정에도 없었다. 인희와 둘이 있었는데 갑자기 이창재 감독이 오더니 이 장면을 찍어야겠다고 마이크를 달아주더라. 방해하지 말고 찍으라 했다. 인희의 행동은 아무도 예측 못했던 일이다.


김영진 편집위원 : 촬영은 총 몇 시간 분량이나 찍었나?

이창재 감독 : 124시간을 찍었다. 편집기를 사무실에 설치하고 두 달 반 동안 작가와 작업했다. 처음 편집본은 3시간짜리였는데 드라마도 있고 굿도 자세하게 설명됐다. 그런데 그 길이를 사람들이 못 견디더라.


김영진 편집위원 : 이해경 선생과의 갈등이 가장 컸던 때는 언제였나?

이창재 감독 : 가편집 때였다. 그땐 정말 대단했다. 이해경 선생님이 나를 안 보려고 하시더라.
대무 이해경 발광을 했다. 솔직히 나는 100% 맘엔 안 든다. 그런데도 이창재 감독은 전혀 신경을 안 쓰더라. 그래서 마음대로 해라, 국을 끓여 먹든 삶아 먹든 맘대로 하세요, 했다.(웃음)


김영진 편집위원 : 왜 그렇게 불만족스러웠나?

대무 이해경 : 내면을 그리다보니 그렇게 됐다지만, 영화를 너무 무겁게 그렸다. 날 너무 울보로 만들어놨다. 영화의 그런 힘든 부분을 대하게 되면 관객들 가슴이 답답해지지 않을까. 요즘은 깊이 보다는 스쳐가는 시간에 만족하고 즐기는 추세인데 이 영화는 너무 무겁다.

이창재 감독 : 예전에 처음 다큐멘터리 찍을 때는 일상의 것만 잡았다. 방송에서 많이 하는 방식이고 그게 쉽다. 밥 먹는 장면, 출근 준비하는 장면 없는 다큐멘터리 거의 없지 않나. 그러니 이해경 선생님이 메탈 좋아하고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집에 쌓아두고 하는 걸로도 충분히 이야기는 된다. 그런데 나는 애초부터 굿으로 가자, 차 끓이고 밥 먹는 거 다 없애자 작정했다. 밥 먹는 장면들을 빼자 <사이에서>가 너무 신비화돼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시간만 들이면 찍을 수 있는 장면이다. 그것보다 내가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밥 먹는 걸로 그 사람을 기억하진 않는다.

대무 이해경 : 내 생활을 봐라. 하나도 신비하지 않다.

이창재 감독 : 또 하나는 사생활의 문제다. 누구나 자기 사생활이 개입당하는 걸 싫어하는데, 생활을 다 뒤집고 이 사람이 이런 사람이라고 증명하는 것, 그런 건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다큐멘터리들은 대개 80년대 엑티비스트 중심 문화에서 나왔다. 날 것의 힘, 그 전통이 너무 오랫동안 깊게 변형되지 않아 일종의 교조주의화됐다. 자기 생활을 다 까발리는 일종의 몰래 카메라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게 다큐멘터리의 힘인 줄 안다. 또, 한국 극영화는 최근 굉장히 많은 실험을 하는데, 다큐멘터리는 여전히 농민적 근면성에 머물러 있다. 특히 사적인 부분을 드러내는 건 폭력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존엄성이 있는 개인인데, 사생활이 있는 개인한테 그럴 필요가 있나. 나 역시 처음 다큐멘터리 작업을 할 땐 내가 다 뒤집으면 본질이, 진실이 밝혀질 거라 생각해 집요하다 못해 불쾌할 만큼 들어갔다. 그런데 나이 먹으면서 느낀 게, 사람 옷을 다 발가벗겨 놓으면 그건 진짜 그 사람의 얼굴이 아니다 싶더라. 옷이나 가식 그런 것도 결국 그 사람을 이루는 것이다. 옷을 입고 있는 이걸 잘 찍는 게 중요하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이해경 선생님의 가족사, 딸이 생각하는 선생님, 친척의 의견 어느 하나 물어본 적 없다. 무당 옷으로 감싸져 있어도 그 안에서 소통되는 게 있다. 굳이 다 벗긴다고 드러나는 게 아니다.


김영진 편집위원 : 그런 점에서 <사이에서>는 다른 한국 다큐멘터리들과 다른 영역을 건드린다. 김동원 감독의 <송환>은 오랜 세월의 힘이 영화의 격이 됐다. <사이에서>에는 그런 시간적 힘은 아니더라도 격이 느껴진다.

이창재 감독 : 어차피 다큐멘터리는 시간의 예술이다. 그물에 대한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한다. 송어를 잡을지, 멸치를 잡을지 그물코를 잘 선택해야지, 결코 오랫동안 크게 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학생들(이창재 감독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교수다)한테 수업을 할 때도 "최소의 시간은 필요하다. 최소한 4개월은 가야지"라고 하지만, 그 다음은 "그물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독립 다큐멘터리 하는 학생들의 농민적 근면성을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부분은 학습으로 고쳐나갈 필요가 있다.


김영진 편집위원 : <사이에서>는 몇 개관에서 상영하나?

이창재 감독 : CGV 강변, 상암, 인천, 서면. 인디영화관 4개관에서 상영한다. 1만 명이 목표다.

대무 이해경 : 이 영화가 국내 개봉한다고 할 때 의아하기도 했지만 '관객이 들겠어?' 싶기도 하더라. 1만 명 통과하라고 굿해서 된다면 하겠지만, 그렇게 해서 모든 게 다 이루어지면 우리나라가 이 모양이겠나.

이창재 감독 : 굿하는 사람이 그렇게 스스로 신뢰가 없어서야 되겠나.(웃음)

대무 이해경 : 꼭 필요하면 하지만 굿은 아무 데나 하는 게 아니다. 어디에 어떻게 해서 어떤 효과를 보는지가 중요한 거다.


이창재 감독 : 배급사인 CJ에서 방송광고를 했는데, 굿은 술, 담배처럼 광고가 안 된다 하더라. 영화인데도 안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대중매체에서 홍보가 영 안 됐다.

대무 이해경 : 그건 애당초 예상했던 일이다. 감독님도 그러지 않았나. 굉장히 어려운 소재고 소외된 부분들을 다루는 것이다. 난 이걸 종교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지 않고 한 여자의 인생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주변의 똑같은 인간인데 약간 다른 삶을 살아가는 여자 말이다. 앞에 무당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가니까 괜히 선입견이 생기는 거다.

이창재 감독 : 오히려 선생님은 담담한데 내가 답답하다. 이 영화는 과학적 증명을 하려는 게 아니다. 무속의 우월성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굿이라는 걸 통해 여자로서 이해경 선생님의 삶을 우회적으로 이야기하려는 건데, 굿 선전하냐, 미신 숭배하냐 이런 오해들을 한다.

대무 이해경 : 나는 따로 홍보할 필요도 없는 사람이고 세상 바깥으로 나가고 싶은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지금 반응은 참 억울하다. 목사님이 나오는 영화를 찍었어봐라. 이렇게 막았겠나.
이창재 감독 무속은 기독교나 가톨릭처럼 공증 받은 주류 종교가 아니라는 거다. 작품으로 안 보고 소재로만 보는 거다. 내가 갑자기 김기덕 감독이 된 기분이다.

대무 이해경 : 나는 괜찮다. 오히려 감독님이 영화도 잘 찍고 능력도 좋은데 소재를 무당이라는 걸 택해 불이익을 당하니 안타깝고 미안하다.

이창재 감독 : 아니다. 내가 월드컵을 찍는다고 반응이 좋겠나.(웃음)


정리 이화정 기자 I 사진 김병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