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녕김씨  
 
요약
김녕김씨(金寧金氏)의 시조는 김은열(金殷說)의 9세손 김시흥(金時興)이다. 
 
 
본문
김시흥은 고려 때 묘청의 난을 진압하면서 공적을 세웠으며 명종 때 김녕군으로 봉해졌다. 김녕은 김해의 옛지명으로 김해김씨와 혼돈이 있어 김녕김씨를 후김(後金)으로 불렀다가 조선말 고종의 왕명에 의해 김녕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고려시대에 평장사 김향(珦), 병부상서 김정병(金挺丙) 및 판도판서 김광저(金光儲) 등이 배출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판서 김익생(金益生)·김윤달(金潤達)·김문기(金文起), 좌찬성 김인찬(金仁贊), 한성판윤 김종남(金從南)·김응수(金應壽), 그리고 방어사 김언공(金彦恭) 등이 있다. 2000년 인구조사에서 16만 2204가구에 51만 301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